몇 년 전, 지인의 의뢰를 받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72V 고출력 전동 서프보드용 커스텀 배터리 팩을 해외로 발송하려다 공항 화물 터미널에서 처참하게 입구컷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절연 처리를 하고 두꺼운 방수, 난연 케이스를 씌웠다 한들 단 한 장의 서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UN38.3' 테스트 통과 인증서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대기업만 통과할 수 있는 까다로운 탁상행정이라며 툴툴거렸지만, 만약 그 거대한 배터리 팩 하나가 수만 피트 상공의 비행기 화물칸에서 기압 차이로 스웰링이 오고 열폭주를 일으켰을 때의 참사를 떠올려보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우리가 작업실에서 니켈 플레이트에 스팟 용접을 치고 절연 테이프를 겹겹이 감는 행위는, 결국 이 무자비한 글로벌 테스트 표준들이 ..
나는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전기자전거가 회사로 가는 중간에 갑자기 멈춘 뒤부터 배터리 사양을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계기판에는 잔량이 남아 있었지만 오르막에서 모터를 작동시키는 순간 전압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BMS가 출력을 차단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남은 거리를 걸어가면서 나는 배터리에 적힌 Ah 숫자가 크다고 해서 언제나 오래가거나 힘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그전까지는 보조배터리에 적힌 10,000mAh나 전기자전거 배터리의 10Ah를 단순히 숫자의 크기로만 비교했습니다. 숫자가 크면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팩을 직접 제작하고 방전 테스트를 반복하면서 용량과 전압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실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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