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얹은 대형 오프그리드(Off-grid) 캠핑카에 15kWh급 대용량 파워뱅크, 즉 소형 ESS(에너지 저장 장치)를 직접 구축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작업실에서 며칠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두꺼운 구리 버스바(Busbar)를 재단하여 수백 개의 리튬이온 셀을 직병렬로 엮어 거대한 팩을 만들고 있자니, '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단 하나의 셀이라도 밸런싱이 틀어져 열폭주가 시작되면 과연 손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서늘한 공포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곳곳의 태양광 발전소와 공단에 설치된 수십 MWh급 상업용 ESS 컨테이너에서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졌습니다. 전기자전거나 스마트폰 배터리에서 불이 나는..
몇 년 전, 지인의 의뢰를 받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72V 고출력 전동 서프보드용 커스텀 배터리 팩을 해외로 발송하려다 공항 화물 터미널에서 처참하게 입구컷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절연 처리를 하고 두꺼운 방수, 난연 케이스를 씌웠다 한들 단 한 장의 서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UN38.3' 테스트 통과 인증서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대기업만 통과할 수 있는 까다로운 탁상행정이라며 툴툴거렸지만, 만약 그 거대한 배터리 팩 하나가 수만 피트 상공의 비행기 화물칸에서 기압 차이로 스웰링이 오고 열폭주를 일으켰을 때의 참사를 떠올려보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우리가 작업실에서 니켈 플레이트에 스팟 용접을 치고 절연 테이프를 겹겹이 감는 행위는, 결국 이 무자비한 글로벌 테스트 표준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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