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항공 촬영용 드론의 배터리 팩을 리빌드하면서 무게 문제로 깊은 한숨을 내쉰 적이 있습니다. 비행시간을 15분만 더 늘려보겠다고 21700 셀을 병렬로 덧붙였더니, 총중량이 2kg을 훌쩍 넘어가면서 모터와 변속기에 극심한 발열이 걸리고 이륙 한계 하중을 초과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작업대 위에 묵직하게 놓인 NCM 팩을 보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무게당 에너지 밀도가 물리적인 벽에 부딪혔음을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아무리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전극 공정을 깎아내도 무거운 전이금속 구조체와 흑연 탄소 격자를 유지하는 한 극적인 경량화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하늘을 날거나 한 번 충전으로 1,000km 이상을 질주하기 위해서는 화학계 자체를 송두리째 뒤바꾸는 혁신이 필..
분당 수만 회 회전하는 무선 청소기의 터보 모드를 켜거나 콘크리트를 파쇄하는 충전 해머드릴의 스위치를 당길 때, 배터리 팩 내부는 정적을 깨고 거대한 전기적 폭풍에 휩싸이게 됩니다. 단 몇 초 만에 30A에서 50A에 달하는 전류를 순간적으로 쏟아내야 하는 전동공구 및 무선 청소기용 배터리 팩은 일반적인 전기자전거나 노트북 팩과는 설계 사상부터 차원을 달리합니다. 단순히 오래 달리는 것이 목적인 배터리가 장거리 마라톤 선수라면, 고출력 팩은 짧은 순간 한계치 출력을 내뿜어야 하는 100m 단거리 스프린터입니다. 수리 작업대 위에서 분해해 본 고출력 팩들의 내부에는 대전류 발열과 충격 진동을 제어하기 위한 고도의 공학적 설계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고용량 셀의 달콤한 유혹을 포기하는 이유: 고방전 셀(Hig..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거리를 700km - 800km 이상으로 끌어올리거나 전동 모빌리티의 가용 시간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배터리 공학자들이 가장 집요하게 개량하고 있는 소재가 바로 음극재입니다. 수십 년간 배터리 음극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 온 흑연(Graphite)은 탄소 결정 구조의 한계로 인해 이론적 최대 용량이 372mAh/g에 묶여 있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소재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실리콘(Silicon)입니다. 실리콘은 이론상 흑연보다 10배 이상 많은 약 4,200mAh/g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꿈의 소재로 불립니다. 그러나 실리콘을 음극재로 적용하는 순간, 셀이 부풀어 오르고 불과 수십 회의 충방전 만에 수명이 끝나버리는 치명적인 볼륨 팽창(Swelling) 현상과..
스마트폰을 구입한 지 2년 정도 지나면 아침에 100%로 충전해서 집을 나서도 반나절을 버티기 힘들어집니다. 전동 킥보드나 전기자전거 역시 오래 타다 보면 계기판에는 전압이 충분하다고 나오는데, 약간의 오르막길만 만나도 전원이 툭 꺼져버리는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됩니다. 배터리를 다루는 정비 현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셀이 늙었다' 혹은 '내부 저항이 찼다'라고 표현합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쓰면 쓸수록, 혹은 가만히 보관만 하더라도 열역학적 법칙에 의해 피할 수 없는 노화(Aging)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용자들을 괴롭히는 배터리 수명 저하 현상 뒤에 숨겨진 공학적 메커니즘을 '용량 감소'와 '내부 저항 증가'라는 두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정밀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노화의 첫 번째 축:..
전동 킥보드나 무선 청소기의 배터리 팩을 리빌드(Refill)하고 나면, 수명을 다한 수십 개의 18650 또는 21700 원통형 셀들이 작업대에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이 죽은 셀들을 일반 쓰레기통에 무심코 던져 넣는 것은 쓰레기 수거차나 매립지에서 끔찍한 열폭주 화재를 일으키는 지름길입니다. 하지만 공학적인 시선으로 보면, 죽은 폐배터리는 단순한 산업 폐기물이 아니라 니켈, 코발트, 리튬이 고농축으로 압축된 '도시의 광산' 그 자체입니다. 배터리의 수명이 다해 셀 내부 저항이 치솟고 용량이 반토막 났더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전이금속 원자 자체가 사라지거나 변질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수명이 끝난 배터리를 물리적으로 파쇄하고 화학적으로 분해하여 새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순도 99...
전기자전거 배터리 팩을 처음 완성했던 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셀 선별부터 스폿 용접까지 모든 과정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끝났고, 마지막으로 BMS만 연결하면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BMS는 단순히 충전과 방전을 제어하는 작은 회로기판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밸런스 커넥터를 연결하는 순간 작은 스파크와 함께 BMS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급하게 전원을 분리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보낸 끝에 문제는 셀 하나의 배선 순서를 잘못 연결한 아주 사소한 실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배터리 DIY에서 가장 긴장되는 작업은 스폿 용접이 아니라 BMS를 연결하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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